코로나19에 부품 및 조립 협력사, 애플 모두 영향권 안으로
시장 상황 감안해 출시 일정 보수적으로 조정했을 가능성도

애플이 하반기 ‘아이폰12(가칭)’ 시리즈 출시를 몇 주 미루면서 그 원인에 대해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TSMC의 수율과 물량이 신통치않은 것 아니냐는 가능성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탓에 부품 수급 및 조립에 차질을 빚었을 것이라는 관점, 혹은 현재 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라는 의견까지 다양하다.

KIPOST는 이와 같은 여러 가능성에 대해 사실 여부를 취재하고, 선택지를 하나씩 제외해보기로 했다.

 

가능성 1. 코로나19 탓 협력업체 생산이 멈췄던 게 문제다? (O)

아직 확산일로인 코로나19는 상반기만 해도 제조업계에 큰 타격을 줬다. 반도체야 다른 제조업체들보다 상대적으로 자동화가 잘 돼있는 덕에 여파가 크지 않았지만, 부품 제조사나 폭스콘 같은 조립 업체들은 이를 피할 수 없었다.

문제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통상 애플은 스마트폰 출시 6개월 전인 2~3월에 자재 및 반도체 협력사들의 상황을 점검하고 양산 인증(Qualification)를 진행한다. 이보다 서플라이체인 한 단계 위에 있는 모듈 업체들에 대한 양산 인증은 4~5월 이뤄진다.

양산 퀄은 단순히 제품의 성능을 보는 게 아니라 실제로 해당 제품을 대량 양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지 점검하는 절차다. 때문에 애플 엔지니어가 직접 협력사를 방문해 생산라인을 둘러보거나 양산 장비들을 확인하는 과정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해외 출장이 막히면서 퀄을 받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한 번 출장으로 되는 일을 전화통화와 이메일로 대체하면서다. 

 

애플 '아이폰SE2'. /사진=애플
애플 '아이폰SE2'. /사진=애플

7월 현재까지도 이같은 해외 출장 문제는 좀처럼 해결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여전히 한국에 입국하는 모든 내·외국인은 14일간 자가격리를 해야하며, 외국인의 경우 격리시설에 가야한다. 격리면제를 신청해 격리 대신 자가진단을 하는 능동감시를 택할 수 있지만 절차가 꽤나 복잡하고 신청이 받아들여지기도 어렵다고 업계는 설명한다.

부품 업계 관계자는 “화상 통화로 애플 엔지니어에게 장비와 생산라인을 보여줬지만, 낮은 화질 때문에 엔지니어가 불평을 쏟아내는 등 난처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며 “퀄을 받는 데 걸리는 기간이 1.5배 가량 길어졌다”고 말했다.

문제가 생겼던 또 하나는 아이폰을 외주생산하는 폭스콘이다. 코로나19가 터지면서 폭스콘은 지난 1월 말부터 중국 현지 모든 공장의 생산을 중단했다. 중국 생산 공장은 폭스콘 전체 생산 용량의 4분의 3을 차지하며, 전체 자동화율도 30%가 채 안된다.

폭스콘 중국 제조공장의 가동이 다시 시작된 건 3월이다. 이 회사는 일터로 조기 복귀하는 직원들에게 3000위안(약 50만원)의 인센티브를 주겠다며 인력 수급에 나섰지만 실제 노동자 복귀율은 40~60% 수준에 불과했다. 폭스콘의 지난 1분기 이익은 20여년 만에 최저를 찍었다.

지난 5월 폭스콘에서는 중국 내 모든 공장이 정상 가동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2분기 내 노동력 역시 안정화될 것이라고 언급했지만 지난 6월까지도 일부 폭스콘 공장의 가동률은 30%를 넘지 않았다.

중국 부품 유통 업체 관계자는 “폭스콘이 다른 제조사보다는 빠르게 코로나19로 인한 여파에서 벗어난 건 사실이지만, 아이폰SE2 등 앞선 제품 생산이 밀려있었다는 점을 감안해야한다”며 “한 번 제품 생산이 밀리면 그 라인에서 만드는 또다른 제품의 생산도 뒤로 밀리는 법”이라고 말했다.

 

가능성 2. 협력사가 아닌 애플의 문제였다? (O)

애플파크.
캘리포니아 주 소재 애플파크./위키피디아

코로나19의 영향은 애플도 피해갈 수 없었다. 해외 출장이 막히면서 양산 퀄을 내는 데도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재택 근무 체제에 돌입하면서 애플 스스로도 개발이 지연됐다.

애플 본사가 위치한 캘리포니아주는 지난 3월 필수적인 외출을 제외하고는 주민들이 집에 머물러야 하는 '자택 대피령'을 내렸다. 엔지니어링 개발을 마무리하던 하드웨어 개발팀 역시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지난 6월 캘리포니아주가 일부 산업 부문을 재개방하도록 허용하면서 하드웨어 개발팀 일부가 사무실로 출근하기 시작했지만, 엔지니어링 검증 테스트(EVT)까지 모두 끝냈는지의 여부는 불투명하다. 

계획대로라면 지난 5월 EVT가 끝났어야하지만 7월 초까지만 해도 신규 모델들에 대한 EVT는 끝나지 않았다고 닛케이아시안리뷰는 보도했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부품 업체들에 대한 퀄이 늦어진 이유 중 하나는 애플의 하드웨어에 대한 의사 결정이 느려졌기 때문”이라며 “하드웨어 엔지니어링은 각 부품을 맡은 인력들이 실시간으로 의견을 조율해가면서 진행하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필수적인데, 재택근무로는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가능성 3. 출시 ‘지연’이 아닌 ‘연기’다?

여러 루머들 중 가장 신빙성 있는 건 애플의 아이폰 출시가 지연된 게 아니라 애플이 일부러 출시를 연기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8월 현재도 코로나19 확산이 이어지고 있고, 소비자 심리도 회복되지 않았는데 굳이 9월에 출시를 해봐야 얻을 이득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 소비자심리지수 추이./YCharts

시장조사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4월 미국 내 스마트폰 판매 채널의 80% 가량이 문을 닫으면서 이달 미국의 스마트폰 판매량은 전년동기 대비 반토막났다. 5월부터 판매량이 증가하기 시작, 6월에는 전년 동기보다 소폭 증가했지만 2분기 전체를 놓고 보면 지난해 2분기보다 25% 정도 판매량이 줄었다.

미국의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 3월 89.10을 지나 4월 71.80으로 저점을 찍었고, 6월 소폭 증가한 뒤 다시 지난달에는 72.50을 기록했다. 지난해 7월에는 97.90이었다. 유럽의 소비자심리지수 역시 4월 78.00을 기록한 이후 7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심리지수가 100을 넘으면 앞으로 생활형편이나 경기, 수입 등이 좋아질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100 미만이면 그 반대다. 

경쟁사인 삼성전자는 코로나19의 영향이 잦아들지 않고 있음에도 스마트폰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감안, 이달 내 ‘갤럭시노트20(가칭)’을 내놓고 내년 초 ‘갤럭시S21(가칭)’도 예상보다 한 달 빠르게 출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부품 업계 관계자는 “2분기보다는 3분기 상황이 나은 건 사실이지만, 그게 시장의 정상화를 뜻한다고 볼 수는 없다”며 “중저가 제품 라인업이 탄탄한 삼성전자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애플은 플래그십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에 신규 수요보다는 교체 수요를 신경쓸 수밖에 없고, 그 교체 수요가 코로나19로 예전만 못하다는 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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