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 개발 플랫폼 갖춰... 비전문가도 개발 가능한 비용효율적 솔루션
고객사 니즈 정확히 파악한 솔루션 개발에도 익숙... 삼성·현대 등 도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을 거듭하면서 원격 근무가 일상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와 함께 그 어느때보다 주목받는 솔루션이 증강현실(AR)이다. 가상현실(VR) 시장이 기업-소비자간(B2C), 그 중에서도 게임에 초점을 맞춰 발전하고 있다면 AR 시장은 기업간(B2B) 솔루션 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 기반이 되는 게 개발 생태계다. 국내에 AR 개발 플랫폼을 가진 업체가 딱 하나 있다. 맥스트(Maxst, 대표 박재완)다. 직원은 50여명에 불과하고, 업력도 10년밖에 되지 않지만 벌써 삼성전자·현대자동차·대우조선해양 등 글로벌 업체들의 선택을 받았다.

 

AR 시장은 왜 B2C가 아닌 B2B일까

AR은 현실에 가상의 사물을 합성, 원래의 환경에 존재하는 사물이나 현상을 투영하는 기술이다. 

 

지난 2016년 출시된 포켓몬고는 젊은층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포켓몬고 공식 홈페이지

초기 AR 시장은 B2C를 중심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게 지난 2016년 한창 붐이 일었던 ‘포켓몬GO’ 게임이다. 이후 AR 게임 콘텐츠들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하지만 ‘포켓몬GO’만큼 성공한 건 단 하나도 없었다. B2C 시장에서 AR의 한계는 명확했다. 현실에 가상의 상을 투영하는 기술인 만큼 현실과 가상의 물체(현상) 간 괴리를 없애는 게 콘텐츠의 질적 기준이었지만, 게이머들의 눈높이를 맞추기란 쉽지 않았다.

가상 공간에서 모든 물체와 현상을 그래픽으로 만드는 일반 게임과 다르게, AR 게임은 현실의 모습에 가상의 물체를 투영해야 하다보니 현실과 그래픽 사이의 차이가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소프트웨어 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잘 만든 게임 그래픽이라도 현실을 능가할 수는 없다”며 “AR 콘텐츠의 반응 속도도 느려서 예를 들어 화면을 급격하게 움직이면 화면에 뒤늦게 상이 뜨기도 하고, 공간이 실외에서 실내로 바뀌거나 하면 기기를 다시 조정해서 주변을 인식해야하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B2C AR 콘텐츠 개발 열풍이 식어가면서 업계는 B2B로 눈을 돌렸다. B2B 시장에서 AR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했다. 그래픽 품질에 대한 요구도 일반 소비자들처럼 까다롭지 않았다. 


구글·애플·HTC와 어깨를 견주다

맥스트도 이 시장을 겨냥했다. 올해로 10년차인 이 회사는 AR 개발 플랫폼과 이를 기반으로 한 솔루션을 개발, 공급한다. 핵심은 자체 개발 플랫폼, 소프트웨어개발키트(SDK)다.

AR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가장 먼저 고르는 게 SDK다. AR 업계에서는 이 SDK를 ‘엔진’이라고 부른다. AR SDK를 제공하는 곳은 많다. 하지만 개발자 생태계나 SDK의 질을 따져보면 상위권 업체들과 하위권 업체들 간 격차가 극명하다. 

상위권에 있는 업체는 구글, 애플, PTC, 언리얼(Unreal), 위키튜드 등이다. 각각 AR코어(ARCore)와 AR키트(ARKit), 뷰포리아, 언리얼 엔진, AR SDK라는 이름의 엔진을 갖고 있다. 

 

맥스트의 AR 개발 플랫폼./맥스트

맥스트는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맥스트의 AR 개발 플랫폼은 AR SDK와 클라우드 기반 이미지 인식 서비스(Cloud Recognizer), 비주얼 슬램(Visual SLAM) 도구, 스마트 글래스 보정(Smart Glasses Calibration), 이미지 트레이너 모듈(Image Trainer Module) 등으로 구성된다.

플랫폼 내 모든 도구는 전문가는 물론 비전문가도 쉽게 사용할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하다는 게 강점이다. 프로(Pro) 구독 기준 월 49.9달러(약 5만9000원)면 이용 가능하다. 덕분에 현재 50여개국 8000여개 이상의 업체들이 맥스트의 AR 개발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시장을 설명하는 단어 중 하나는 락인(Lock-in) 효과다. 더 좋은 성능의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나와도 개발자들이 한번 사용해본 소프트웨어를 계속해서 쓰는 걸 뜻한다. SDK도 마찬가지다. 

구글과 애플은 AR 엔진을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PTC는 시장 초기부터 활약, 선점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그럼에도 맥스트의 AR 개발 플랫폼이 사장되지 않고 이들과 겨룰 수 있었던 까닭은 AR 개발자와 AR을 쓰려는 기업들이 원하는 솔루션을 만드는 데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유지윤 맥스트 수석은 “맥스트 솔루션의 기반이 되는 건 AR 엔진을 갖고 있다는 것”이라며 “AR 플랫폼과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체들은 많지만 자체 AR 엔진이 있다보니 고객사의 니즈에 맞게 솔루션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라고 말했다.

 

통신부터 반도체·자동차·조선까지

지난 2018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는 제조 라인에 있는 설비를 관리하고 점검 지원하는 데 AR 솔루션을 도입했다. 당시 장비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도입한 AR 솔루션이 어느 회사의 제품인지를 두고 많은 이야기가 오갔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맥스트다.

맥스트의 AR 솔루션은 맥스워크 다이렉트(MAXWORK Direct), 맥스워크 리모트(MAXWORK Remote), 맥스워크 크리에이트(MAXWORK Create) 등 3종이다. 

 

맥스워크 다이렉트. AR 기기를 쓰고 장비를 보면 이같은 화면이 뜬다./맥스트

삼성전자가 채택한 건 맥스워크 다이렉트와 맥스워크 크리에이트다. 맥스워크 다이렉트는 설비의 사물인터넷(IoT) 데이터, 생산 정보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동시에 매뉴얼과 점검 방법 등을 증강해준다. 맥스워크 크리에이트는 맥스워크 다이렉트용 콘텐츠를 만드는 도구로 웹상에서 제공된다.

제조사도, 설비 업체도 마찬가지겠지만 설비 엔지니어를 육성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애초에 대학에서도 최신 장비를 가지고 교육하는 곳은 드물다. 구식 장비로밖에 배울 수 없으니 입사를 하고나면 이들을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야한다. 

게다가 제조사의 경우 생산 라인 한 곳에 수백 대의 장비가 있다. 각 설비별로 엔지니어들이 나뉘어있다 해도 설비별로 레시피도, 공급업체도 다르기 때문에 길게는 수 달간의 교육을 받아야한다. 생산라인에 제조사의 엔지니어보다 장비 업체 등 협력사 소속 엔지니어들이 더 많은 건 이 때문이다.

AR로 장비별 매뉴얼과 점검 방법을 띄워주면 이같은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다. 특히 신규 설비를 도입할 때나 교육이 필요할 때 설비의 점검, 조작 등에 관한 정보를 보다 직관적이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고 맥스트는 설명했다.

유 수석은 “반도체 설비 같은 경우 내부가 굉장히 복잡하기 때문에 AR 솔루션의 정확도가 높아야했다”며 “보안이나 편의성에 대한 요구사항도 까다로웠는데, 글로벌 업체와 경쟁해 맥스트가 프로젝트를 수주했다”고 설명했다.

 

제네시스를 구입하면 제공되는 AR 매뉴얼./맥스트
제네시스를 구입하면 제공되는 AR 매뉴얼./맥스트

현대자동차도 맥스워크 다이렉트를 도입했다. 북미 지역에서 제네시스 차량을 구매하면 제공되는 AR 매뉴얼이 맥스트의 작품이다. 매일 타고다니는 차량이라도 엔진룸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매뉴얼은 운전자 스스로 엔진룸을 자가 유지보수 할 수 있도록 각 부품에 대한 설명서를 제공한다. 

맥스워크 리모트는 특히 글로벌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 업체들에게 유용한 솔루션이다. 장비 업체들은 고객사의 생산라인에 장비를 구축(Setup)할 때 보통 본사 엔지니어를 보내 작업하게 한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원격 근무가 일상화되고, 한 번 출장에 약 한 달의 격리 기간까지 보내게 되면서 장비 업체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맥스워크 리모트는 현장 작업자가 설비를 들여다볼 때 전문가가 원격으로 이를 지원해줄 수 있도록 해준다. 예를 들어서 지사에 근무하는 엔지니어나 현지 협력사 엔지니어가 AR 기기를 쓰고 설비를 들여다보면, 그 화면이 실시간으로 전문가에게 전달되면서 전문가가 해야하는 작업을 일러주는 식이다. 

유 수석은 “AR 솔루션은 개발 비용과 구축 비용이 들어가지만 해외 업체들에 비하면 저렴하다”며 “지금까지 고객사는 대부분 대기업이지만 소매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나 중소기업들도 쓸 수 있도록 범용 솔루션을 개발하는 것도 가능하고, 실제 코엑스 내부 입점 업체들에게 AR 솔루션을 제공할 예정”이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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