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 데이터센터용으로는 BEP 쉽지 않아
자체 통신망에 최적화된 AI칩 필요
기존 B2C매출 B2B까지 확대 구상

SK텔레콤이 AI 반도체 개발 5년 차를 맞았다. 통신 회사가 자사 서버용 AI칩 개발에 나섰을 때 업계는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SK텔레콤의 데이터 센터 규모는 10만대 내외다. 규모가 작아 자사 서버에 대한 칩 공급만으로 BEP(손익분기점)를 넘기 쉽지 않다. ASIC(주문형반도체)으로 전환하면서 NRE(개발비용)도 급증했다.

그렇다면 SK텔레콤은 왜 위험부담을 안고 굳이 자사 AI반도체 개발에 나섰을까. "칩을 팔기 위해서라기보다는 AI 서비스를 더 잘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는 김윤 SK텔레콤 CTO의 발언에 그 해답이 숨어있다.

통신 회사를 넘어 서비스 기업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SK텔레콤의 행보를 짚어봤다.

SK텔레콤 본사 전경./사진=SK텔레콤

자사 데이터센터용 BEP넘기 쉽지 않아

SK텔레콤은 통신 회사다. 통신 회사가 자사 서버용 AI칩 개발에 나섰을 때 업계에서는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이미 성능이 검증된 GPU(그래픽처리장치)도 있고, AI 가속기(AI accelerator) 개발 스타트업들도 많은데 굳이 통신 회사가 많은 R&D(연구개발) 비용을 쏟아부어 개발에 직접 나설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우선 NRE 대비 BEP를 넘기기 쉽지 않다. 자사 데이터센터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구글⋅바이두⋅알리바바 등 ASIC 기반 AI칩을 만든 글로벌 IT업체들은 자사의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를 가지고 있다.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란 통상 최소 10만대 서버를 운영하고 2만2500㎡ 이상의 규모를 갖추고 있는 데이터센터를 의미한다. 이들 업체들의 경우 수백만대의 서버를 운영하고 있다. 자사 데이터센터만 공급해도 BEP를 넘길 수 있는 규모다. 비용 투입 대비 위험부담이 적다. 

반면 SK텔레콤의 데이터센터 규모는 10만대 내외에 불과하다. 자사 센터만 공급해서는 BEP를 넘기 쉽지 않다.

여기에 지난해 ASIC 칩을 선보이며 NRE도 늘었다. SK텔레콤이 지난해 선보인 데이터센터용 AI 반도체 '사피온(SAPEON) X220'은 ASIC 반도체다. 2018년 FPGA(프로그래머블반도체)를 선보인 데 이어 ASIC 대량생산을 통해 타사에까지 칩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SK텔레콤 측은 사피온X220 가격이 GPU의 절반 수준임에도 딥러닝 연산 속도가 1.5배 빠르고, 전력사용은 80%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데이터센터용 AI 반도체 '사피온(SAPEON)'./사진=SK텔레콤
데이터센터용 AI 반도체 '사피온(SAPEON)'./사진=SK텔레콤

통상 ASIC은 FPGA보다 NRE가 많이 든다. 연구개발 및 양산 비용만 적어도 10배 이상 증가한다. 인건비를 포함해 전체 투입되는 비용은 최소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까지 든다. 

한 팹리스 업체 CTO(최고기술책임자)는 "물론 GPU 가격이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타사 칩을 계속 구매한다는 게 부담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구글의 경우 자사 칩을 만들어도 GPU대비 GPU조달 가격보다 낮거나 TCO(총소유비용)만 낮아도 승산이 있기 때문에 내재화한 것이다. 자사 데이터센터 규모가 작다면 내부용에만 공급해서는 가성비가 나오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다음 칩은 7나노로 생산하는 것으로 안다"며 "그만큼 NRE는 높아지고, 그 비용을 상쇄할 만큼 공급처가 없다면 칩에 투입한 비용을 넘어서는 효과를 낼 수 없다"고 말했다. 

더욱이 당장은 타사 데이터센터 공급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비용이 많이 투입되는 데이터센터에 검증되지 않은 것을 잘 쓰지 않기 때문이다. 공득조 GIST(광주과학기술원) 인공지능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몇천억원이 투입되는 데이터센터에 단순히 몇억원 아끼겠다고 갑자기 새로운 칩을 도입하지는 않는다"며 "타사 데이터센터에 대한 칩 공급은 성능이 우수하다는 검증 과정이 중요하다. 포트폴리오를 구축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목표는 AI⋅5G⋅클라우드 결합 서비스 

그렇다면 SK텔레콤은 왜 위험부담을 안고 AI반도체 개발에 직접 나섰을까. 

김윤 SK텔레콤 CTO는 지난해 한 행사에서 SK텔레콤이 굳이 AI반도체 개발에 나선 이유에 대해 'AI서비스'에 방점을 둔 답을 내놨다. 김 CTO는 AI서비스를 더 잘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SK텔레콤이 컨트롤하지 못한 AI반도체가 필수라고 밝혔다. 

자사 AI칩과 최적화한 AI서비스는 무엇일까. 

SK텔레콤은 현재 5G MEC(모바일엣지컴퓨팅) 서비스를 구축하고 있다. 전국 5G 주요 거점 지역 총 12개에 MEC 센터를 구축 중이다. 또한 자사가 보유한 5G MEC 기술에 AWS(아마존웹서비스)의 퍼블릭 클라우드 기술 및 서비스를 접목해 5G 엣지 클라우드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MEC는 엣지 컴퓨팅에 모바일을 합친 것이다. 초고속⋅초저지연 AI서비스에 5G와 MEC을 모두 결합한다. 엣지 컴퓨팅은 클라우드처럼 중앙이 아닌 가장자리의 단말기기를 사용한다는 의미다. 

5G 시대에는 자율주행, 클라우드 게임, AR(증강현실)⋅VR(가상현실) 등 수많은 서비스가 등장한다. 문제는 디바이스에서 기지국⋅교환국⋅인터넷망을 거쳐야만 데이터센터(클라우드)에 이르는 현재의 서비스 구조로는 5G의 초저지연 서비스가 완성되지 않는 것이다. 전송 과정에서 거쳐야 하는 곳이 너무 많다는 것은  초고속 서비스를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다. 

MEC는 이를 구현하는 플랫폼이다. 기지국⋅교환국⋅인터넷망의 중간 전송처를 생략하는 대신 기지국이나 교환국에 데이터센터를 전진 배치한다. 유선망을 거치지 않아도 되고 사용자와 더 가까운 곳에서 송신 데이터를 처리하기 때문에 실시간 AI서비스 구현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자사 통신망에 최적화된 AI칩이다. 김종원 GIST AI대학원장은 "MEC는 여전히 통신이고 데이터를 전달하는 부분과 통신의 형상은 다르다"며 "특히 엣지단에서 데이터센터를 전진 배치하게 되면 이에 최적화할 수 있는 맞춤화된 칩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자사 칩 개발에 나섰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전문가도 "5G MEC는 AI가속기와 호환이 중요하다"며 "통신사에 최적화된 AI가속기는 현재 최적화된 것이 시장에 없다. 자사 서비스에 최적화된 칩이고, 장기적으로 서비스 시장을 선점한다면 이윤이 남을 것으로 봤을 것"이라고 전했다. 

목표는 서비스 시장 선점이다. 기존 4G시장에서 대형IT 기업들에 있었던 헤게모니를 통신사로 가져오는 것이다. 4G 서비스 시장 확대로 'FAN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과 같은 IT기업들이 수혜를 입었지만, 통신사들은 일부 망 사용료만 받는 데 그쳤다. 

SK텔레콤의 5G MEC 적용 사례./자료=SK텔레콤

반면 MEC는 통신사 기지국에 데이터센터를 배치한다. 각 기업에서 MEC 이용료를 받거나, 전용 데이터센터를 구축해 줄 수도 있다. 기존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매출을 B2B(기업 간 거래)로 확대할 수 있는 것이다. AR⋅VR⋅메타버스 등 자사 서비스 사업 기회를 넓힐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SK텔레콤은 B2C매출만 있었는데 AI칩과 서비스의 결합으로 이제 B2B매출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내가 가진 기지국에 서버를 설치해놓을 테니까 망 사용료를 내라는 것이 SK텔레콤의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인텔은 MEC에 적용되는 시스템 반도체 시장이 2023년이면 650억달러(약 72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2024년이면 기지국이 클라우드 데이터센터화되는 비율은 80%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인도의 시장조사‧컨설팅기관 모르도르 인텔리전스(Mordor) 역시 2025년이면 전 세계 MEC 시장이 1570억달러(약 176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장준혁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AI칩 개발은 SK텔레콤이 단순히 통신서비스 회사로 남지 않겠다는 의지"라며 "자사 데이터센터에서 클라우드까지 확장해 시너지 효과를 누리고자 하는 것이다. 자사 칩 개발은 그 큰 그림 속에 놓여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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